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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ng2you | 2007/05/03 14:31 | 트랙백(3) | 덧글(0)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요즘 가끔 들르는 이동진의 영화풍경에 박찬욱과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박찬욱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냅시다."가 이 영화의 키워드 같은 문장이죠. FM 라디오를 듣다보면 희망을 예찬하는 말을 DJ들이 참 자주 반복하는데, 무척 듣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희망을 갖는다고 되긴 뭐가 되겠습니까. 희망을 가지면 뭐든 다 이뤄질 것처럼 말하지만, 제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거짓말을 집어치우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죽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니 계속 살아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존재의 목적을 계속 묻는데, 그것은 사실 존재하는 것 그 자체이고 밥 먹고 살아가는 일이지요. 요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뭔가 거창한 것에 대해 감독들이 염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념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그런 관념적인 것들에 대해 갖는 거부감이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표출 됐나 봅니다.

사르트르의 말이 생각난다. "무슨 일을 꾀하기 위해서 희망을 가질 필요는 없다." 희망, 진리, 사랑, 영원 등의 의미 없는(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말들의 놀이에 끼어드는 것보단, '삶'으로 '존재'로 사는 게 나도 더 좋더라. 그래서 사르트르의, 박찬욱의 이런 말들이 참 맘에 든다.

by ising2you | 2007/05/02 11:31 | 현실 | 트랙백(3) | 덧글(2)

라스트 데이즈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를 봤다. 여러번 나누어서 봤다. 익숙하지 않은 형식의 영화였다. 난 습관적으로 무언가를(이를테면 스토리가 되고 내러티브가 되는 그런 것들을) 찾으려 했다.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날들이, 우상의 죽음이 무얼 보여주길 원했던 걸까?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의 줄리아 크리스테바 편에서 읽은 글이 떠오른다.

대중 매체는 이런 죽음 욕망을 부추긴다. 고된 하루 끝에 사람들이 즐겨 보는 영화들을 보라. 스릴러나 호러 영화,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아닌가. 우린 이런 폭력에 끌린다.

나는 죽음 욕망을 투사하여 커트 코베인을 관찰한 것이다. 죽음 욕망, 대중은 그를 향했고, 그도 그를 향했다.

by ising2you | 2007/05/01 18:00 | 현실 | 트랙백(3) | 덧글(0)

사실들

신은 없다. 나는 얼마간의 시간을 살다가 죽는다. 인간은 지구의 수많은 종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도덕은 인간이 사회를 유지해나가기 위해 만든 것이다. 선악의 개념은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생명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성과 감정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육체와 영혼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by ising2you | 2007/05/01 10:56 | 현실 | 트랙백(24) | 덧글(223)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연습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연습은 우리 손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습관을 없애는 일입니다. 손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기보다 글씨를 쓰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손의 근육과 미세한 신경은 작은 글씨를 쓰기 위한 움직임으로 발달해 왔습니다. 때문에 작고 세밀한 묘사를 할 때에는 상관이 없지만, 어느 정도 이상 그림의 크기가 커지면 긴 선을 긋는 스트로크가 매우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집니다.

김충원, 스케치 쉽게 하기, 진선출판사

by ising2you | 2007/04/30 17:18 | 자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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